-23세기 좀비 신드롬 1편에서 이어집니다. 반드시 1편부터 읽으세요.

조금 늦은 편이지만 아주 다행하게도 좀비 신드롬의 원인을 찾아내었다. 노련한 학자는 좀비 신드롬이 모든 면에서 컴퓨터 바이러스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슈퍼컴퓨터의 도움으로 끝내 감염 경로와 그것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도 찾아 낼 수 있었다. 고전적인 컴퓨터에서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컴퓨터 바이러스는 연산능력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다음 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으며, 양자 수준에서 연산을 할 수 있게 된 인공지능의 진보 과정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21세기 말에 본격화된 휴먼형 안드로이드의 전자두뇌에까지 침범한 바이러스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살인의 도구로 전락하기도 해서 사회적인 물의를 빚었었다.

그리고 그것은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한층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충분한 안전장치와 백억의 백억 자리가 넘는 암호체계가 보편화되면서 바이러스는 주춤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연산능력이 발전한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서 보안체계를 무너뜨리며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이 역시도 인공 화학물 대신에 유기체를 이용한 컴퓨터가 개발되자 전자 작용에 익숙한 컴퓨터 바이러스는 설 곳을 잃고 사라져 버렸다. 이것이 '컴퓨터 바이러스의 종말'이라고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컴퓨터 바이러스는 결코 사라진 것이 아니었고, 표면적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바이러스는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인류의 숫자 보다 많은 안드로이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속에 분산되고, 인간이 수명연장을 위해 개발한 대체기관의 CPU와 메모리에 은밀하게 숨어 있으면서 진화를 계속했던 것이다. 특히 사람이 자신의 기억력이나 연산능력, 생체 제어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장착한 인공두뇌에도 침범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유기체의 정보까지 획득하여 이용할 수 있게 되자 단순한 전자 바이러스가 아닌 살아있는 바이러스로까지 진화할 수 있었다. 연산속도가 빨라진 만큼 세대가 짧아진 바이러스에게 200년은 충분한 진화 기간이 되었을 것이다.



좀비 바이러스(zombie virus)
라 이름 붙여진 이것은 물질로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생명체로의 진화에 성공했다. 생명은 물질이 아니라 형태이며 활동의 방식일 뿐이다. 우리도 먼저 물질의 상태로 태어나지만 그것은 어미의 마음이 구체화된 것이고, 자신의 제어력이 선천적인 것을 넘어서면 자신의 마음에 따라 자신의 생명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명은 물질에 기인하고 물질에 의존하지만 결코 물질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뇌의 활동과 별개로 존재하고, 뇌는 마음에 대해 일차적으로 반응하는 것뿐이다. 마음은 나를 우리 차원에서 현실화하기 위해 물질에 기생하는 것이다.

좀비 바이러스는 특이한 형태의 생명이고, 지구상에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특별한 생명체였다. 전혀 물질에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고유한 형태의 패턴을 가지고 인간을 숙주고 삼고, 인간의 마음에 기생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바이러스는 숙주의 정신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숙주의 정신이 과부하 상태가 되면 숙주는 글자 그대로 좀비가 된다. 그동안 바이러스는 숙주의 마음을 조정하여 숙주의 몸에서 가장 민감한 송과선을 변질시키고, 숙주의 기억에 저장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명을 원격복제하고, 고유한 패턴끼리는 원격으로 감응한 것이다.

좀비 바이러스의 존재는 쉽게 증명할 수 있었다. 감염된 사람의 기억을 포맷하고 감염 이전의 상태의 기억을 주입하면 더 이상 좀비 신드롬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든지 다시 감염될 수 있고, 실재로 그렇게 되었다. 좀비 바이러스의 감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송과선에서 나오는 미세하지만 강력한 라디오파를 완전히 차단하는 시설에서 영원히 나오지 않거나 아무런 대인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고립된 삶을 살았던 사람만이 감염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송과선에 형성된 결정에서 나오는 라디오파는 지구의 모든 광물과 공명하는 정신 영역의 파동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피할 곳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숙주가 죽으면 자신들도 기생할 곳이 없는 것을 아는지 좀비 바이러스의 활동 주기는 하루 두 시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니치 천문대(Greenwich observatory)를 기준으로 밤 10시 24분에서 12시 13분까지 약 두 시간 동안 전 세계의 모든 인류는 일제히 활동을 멈춘다. 그리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던 일을 계속한다. 이렇게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자 인류는 점점 이것에 익숙해지고 크게 불편해 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게 되었다. 사실 좀비 신드롬은 사람에게 별다른 부작용을 유발하지도 않았다. 그저 하루 중 두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에 불과하며, 어떤 면에서는 인간에게 유용한 결과를 주고 있다. 좀비가 되는 두 시간 동안 두뇌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음에도 정신은 완전한 휴식을 취하는지 더 이상 잠을 잘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수많은 학자들이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나 별 다른 성과는 없다. 몇 번 백신을 개발한 적도 있었다. 좀비 바이러스의 패턴을 모방한 바이러스를 인공지능에 주입하여 그 정신의 형태를 기록하고, 그것을 억제하도록 프로그램한 후에 다시 인간의 기억에 주입한 것이다. 그러나 잠시 효과가 있는 듯 했지만 이틀이 지나지 않아 백신은 인간의 기억영역에서 삭제되어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전 인류에게 기생한 모든 좀비 바이러스는 백신에 대한 저항력을 가진 상태로 진화해 버렸다.



단 한 사람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사람은 없었고, 또 백여 년이 흘렀음에도 어느 누구도 이 새로운 형태의 생명에 대하여 면역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누구도 불편해 하지 않는다. 아니 이제는 익숙해짐을 넘어서 바이러스와 인류는 숙주와 기생의 관계가 아니라 공생관계와 비슷한 상태가 되어있다. 수면 욕구가 사라진 인류는 그때부터 이 신종 형태의 생명 연구에 집요하게 매달렸고, 그것은 다시 정신과 마음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이전까지의 문명이 물질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문명이었다면 그때부터의 문명은 정신과 의식에 대한 문명이었다. 인류의 의식은 급격하게 확장되었고, 바이러스에 의해 자극받은 송과선의 작용 때문인지 서로의 감응이 가능해지고 있었다.

오랜 옛날 바이러스에서 출발해 고등 생물이 되었던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듯, 마음에 기생한 바이러스는 인간의 정신을 자극하며 새로운 진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이제는 하루 중 절반을 좀비 상태로 지내고 있으나 예전처럼 의식을 온전하게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에도 실낱같은 의식의 끈이 이어져 있어, 바이러스의 의식과 그들이 활동하는 의미와 목적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그 상태가 뚜렷해지면서 바이러스와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백년이 흘렀다.

이제는 이들의 생각이 명백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들을 더 이상 바이러스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인간의 정신에 기생하면서 마음의 근본 원리를 모방했지만 이제 새로운 상태로 진화한 이들은 인류보다 한발 앞서 모든 개체의 사념을 통합하였고, 이제 그것으로 인류의 의식도 진화시키고 있다. 이들이 인류와 공생을 택한 이유는 이들이 인간에게 기생하는 동안 인류가 잊고 있었던 인류의 본래 목적을 유전자 깊은 곳에서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인류와 모든 생물들은 창조된 생명이었고, 유전자라는 설계도 안에는 창조의 목적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원래 이 우주는 더 높은 차원에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세계의 일부를 4차원으로 시뮬레이션(simulation)한 세계이고, 그것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구동 중이다. 그리고 다른 우주에서 시스템의 정보를 탐지하기 위해 투입한 바이러스가 바로 우리 생명체인 것이다. 이 생명체는 꾸준히 자신을 복제하며 더 복잡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하여 시스템에 적응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고, 무엇보다 시스템의 감시를 피해 생존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사물을 인지할 수 있는 일정한 수준의 지성을 갖추면 시스템의 정보를 탐색해 창조자에게 전송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 뒀어도 인류는 언젠가 그 목적과 의무를 깨달았을 것이지만, 인류가 만든 바이러스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설계도의 해석이 빨라진 것이다.

옛날 같았으면 인류는 밝혀진 진실 앞에 망연자실 했을 것이지만, 그런 심리까지 정확히 예측한 창조자의 설계대로 정신이 극도로 발달한 인류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우주를 해킹하기 시작했다. 무한한 정신으로 열심히 우주의 정보를 모아 놓으면 저장된 정보는 송과선의 결정에 고정된 채널을 통해 생명을 설계한 해커에게로 전송된다. 우주와 닮은 생명의 속성 덕분에 시스템은 인류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고, 해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인류는 자신들이 만든 좀비 바이러스라는 변수 덕분에 설계자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의식 확장을 이루었다. 그래서 인류의 정신에는 바이러스의 진화 역사와 경험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이다. 지금 인류는 우주를 해킹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창조자의 정신에 침입할 경로를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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