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우주에 미스너의 작은 우주(Misner space)가 하나 있다고 하면, 우주의 안과 밖의 경계는 곧 미스너 우주의 벽과 같을 것입니다. 미스너 우주가 우주의 내부에 있다면 미스너 우주의 크기는 태초의 특이점만큼 작은 공간이 되고, 그 작은 공간은 무(無)와 같으면서도 우주의 전체 질량이 담겨 있던 그릇입니다.

그런데 미스너 우주가 우리 우주의 밖에 있다면 그 경계면의 크기는 우주 전체와 같습니다. 우주가 외부를 향해 어느 방향으로 확장(팽창)해 나가든 우주의 경계면이 유기적이지 못하면 우주는 항상 원래 우주로 돌아오게 되고, 근본적으로 우주는 더는 확장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경계면이 딱딱하다면 우주는 팽창해 나갈수록 경계면에서 다시 태초의 상태로 회귀하게 됩니다. 즉 우주는 확장할수록 수축하게 됩니다. 우주가 확장을 거듭할수록 경계면에는 더 많은 물질이 압축되어서, 마침내 미스너 우주의 경계면을 제외한 모든 내부와 외부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경계면의 안과 밖은 관념상 뒤집히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바깥은 크기가 '0'이 되어 다른 무언가를 감싸거나 둘러싸이는 경계가 있을 수 없으므로, 우주는 최초의 특이점에 도달한 것이 됩니다. 결국, 우주의 팽창은 곧 수축이며, 지금 우주는 우리의 인지와 달리 수축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확장하고 있다고 하여도, 우주가 미스너의 경계를 중심으로 뒤집혀 있다면 우리 우주는 사실 수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수축이 끝나는 순간 우주는 다시 뒤집히고 경계면의 안은 다시 밖을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주는 모든 시공상의 방향이 바뀌므로 수축력은 그와 함께 팽창력으로 전환되어 새로운 우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우주의 경계면은 물질이 존재하는 영역의 끝자락을 잇는 구면이고, 빛이 닿는 중심에서 가장 먼 곳을 한정 짓는 범위이고, 어떤 형태라도 존재하는 에너지의 장이 미치는 영역의 한계점입니다. 그리고 우주를 관찰하는 의식체가 볼 수 있는 시야의 끝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우주의 탄생과 주관의 주체와 관련이 있는 문제입니다.

열역학의 시인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은 ‘우주는 비평형인 됨(becoming)의 상태가 일반적이고, 안정된 상태인 있음(being)은 예외적인 경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는 상태는 역동적인 우주가 아니라 고정된 우주입니다. 우리가 안정을 느끼는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활동하는 우주가 아니라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해주는 우주, 즉 모든 변화가 끝나버린 죽은 우주입니다. 엔트로피가 끝없이 증가하여 완벽하게 안정되어버린 우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주의 종말을 추구하는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기적으로는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항상 열정과 변화를 사랑해 왔습니다. 우주는 원래부터 거시적인 역동성과 부분적인 안정을 질서로 삼고 있으며, 우리와 모든 생명체는 그런 우주와 속성을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우주는 에너지를 영원히 소비하기만 하는 듯 보이면서도 경계면에서는 무질서하게 흐트러져 있는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오히려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산일구조(dissipative structure)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시적으로 볼 때, 우주가 의지를 모방하거나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선택한 자생적 조직화(self-organization)의 도구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모든 생명 활동은 바로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행위입니다.

황금빛 넝쿨이 무성하게 엉킨 듯이 일정한 패턴을 이루는 우주는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멀리서 우주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면, 정교하게 조각한 예술 작품을 보는 것처럼 섬세하면서도 우아하고, 역동적이면서도 질서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인가 우주의 가장자리 한 귀퉁이가 경계를 넘어 떨어져 나간 적이 있고, 나는 그것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 꿈을 꾼 기억이 납니다. 작은 넝쿨 조각 하나에 불과해 보이던 그것이 사실은 작은 틈을 메우고자 끼워 넣은 인공구조물이 맞지 않아서 떨어진 3,000억 광년짜리 우주 조각이었습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의 기준에서는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진행된 압도적인 공학의 구조물이지만, 시간과 공간의 한계와 경계가 없는 우주의 의지에는 삐걱거리는 의자에 못 하나를 박는 것처럼 일상적인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프리고진이 말했듯 우주의 탄생은 우주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이었을 뿐이고, 우리 우주의 탄생 이전의 시간은 메타우주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시간은 우리 우주의 시간일 뿐이며, 우리가 발견한 모든 별과 우리가 계산한 에너지의 총계는 우리 우주의 질량에 속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 우주 작은 모퉁이의 우주 한 조각에서 떨어진 채 수리를 기다리는 동안, 빈 곳을 메우고 땜질하는 혈청처럼 작용하며 나름의 대폭발을 계획하고 생명을 태동시켰습니다.

우리가 지금 메타 우주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떠도는 우주 조각일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주에 속해 있으며, 우주의 보호와 관심 속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우주의 경계를 넘어선 것도 아니며 우주의 경계면을 확장시킨 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우주의 경계면이란 다분히 관념적입니다. 물론 그 관념의 주체는 우리가 아닌 우주의 의지일 수도 있으며, 경계면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경계 너머가 실제로는 극심한 수축하고 있고, 모든 시공적 경계면이 수축하는 지향점이 하나의 공통적인 시공상의 좌표에 일치하고 있다고 하여도, 우리는 그것을 인식할 수 없습니다. 아니 우리가 경계면의 안쪽에 있어 팽창하는 중인지 경계를 넘어 수축하는 중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수학적으로 절대공간의 영향에 시간상으로 어긋나는 파장의 크기를 계산해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사실은 처음부터 같은 상태의 지배를 받는 우주의 법칙대로 움직이는 현상들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우리 우주의 99%가 경계면을 넘어섰다고 해도 그를 인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처럼 대폭발(big bang)이나 대붕괴(big crunch)는 절대적인 시공간 상에서 볼 때 일어나는 수축과 확장에 대한 수치적인 차이일 뿐이지, 그에 속한 물질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주가 역전하는 순간마다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요동치는 우주는 새로운 수축과 팽창의 경계점을 맞을 때마다 더 큰 우주 질서에 따라 모든 것이 그것에 모순 없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마다 정해진 틀 속에서 새로운 우주를 반복해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니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이 얼마나 넓고 깊고 정결해지는가에 의해 우리는 지각하는 범위를 정하게 됩니다. 삶이 순간임을 알면서도 그에 연연하여 자신의 경계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우주의 경계를 넘거나 거스를 수 없습니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말처럼 지금 하지 않으면 다음 생도 마찬가지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주가 의식을 지닌 존재에게 보이고자 항상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주의 주체는 바로 우리, 나 자신입니다.



우리 우주의 시간으로 역전의 순간이 눈앞에 이르러 있습니다. 지역 우주에서 벗어날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실제로 각성하는 것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주는 항상 모든 가능성에 대하여 확률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같이 우주의 경계를 넘어 볼까요?

- 오랜만에 뵙습니다. 모두 풍성한 한가위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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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계인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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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3 11:3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

    소음과 공해로 고통받는 한 인간이...

    솔직히 졸려서 모르겠다. 이 또한 무슨 현상이란 말인가???

    인간이 지랄같은데, 아무리 우주의 진리가 밝혀진다고 해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랄' 이말은 정말 예술이다.
    • 2009.10.04 22: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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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인간이 자판앞에서 머리를 굴리며 글을 썼다고 그것이 우주의 진리에 근접할 수는 없을 겁니다. 블로그의 포스트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가능성을 여과없이 그대로 적은 말장난에 불과하죠.
  2. 낙타
    2009.10.04 00:3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한 소식 들으신 분인가요? 만일 그렇다면 알고 싶습니다.
    "둘이 아님을 말할 뿐이겠으나 굳이 이름하여 하나라고 부르니,
    하나라고 하여 속이지도 말고 바로 일러주십시요.
    무엇입니까?"
    • 2009.10.04 22: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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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심오한 것을 기대하거나, 확인하고 싶은게 있으신 모양입니다만, 여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잠시 쉬면서 사고의 유희를 즐기시기를 바랄 뿐이죠 ^^)
      (근데 선문답은 속성을 이야기하시것 같군요)
  3. Katabatic
    2009.10.04 19:2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추석 저녁에 좋은글 읽고 갑니다.
    건필해주시길.
    • 2009.10.04 22:3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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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뒹글거리다보니 어느샌가 연휴의 끝이 코앞이네요.
      쉬는 동안 정리한 글들을 좀 올려보려고 했는데.. 이거참~!
  4. 프리메이슨
    2009.10.06 19:2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오랜만에 글올라왔네~
    잘보고갑니다 하루에한번씩들리고 있습니다~
    비과학부분만 벌써 10번씩 읽은듯~
    수고하세요!^^
    • 2009.10.26 20: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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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정말 제 글을 좋아하시는 분이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5. 찬찬
    2009.10.25 04:3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마지막 은하가 빛을 잃고 모든 남아 있는 블랙홀들이 합쳐진 후에, 도저히 셀 수도 없고 셀 의미도 없는 만큼의 시간이 지나간 후...
    우리가 아는 모든 은하들을 먹어 치워 버린 그 블랙홀의 질량이 임계질량 밑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을 상상해 보셨나요?
    그 순간, 그곳이 새로운 우주의 탄생의 순간이 되지는 않을까요?
    어차피 우리의 기준에 사건의 지평선은 무한에 가까운 공간의 외곡 속에 시간이 멈춘 것으로 보이듯이, 사건의 지평선 안쪽에서 바라본 사건의 지평선 밖은 무한에 가까운 공간과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열려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쩜 빅뱅이란 애초부터 블랙홀이 임계질량 밑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을 의미할 지도 모를 일이죠.
    • 2009.10.26 20:31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멋진 구상이네요.
      우리가 알고있는 우주의 모델은 환상적이긴 하지만 아직 검증하기 어렵고, 뭔가 미진한 부분이 많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새로운 가설과 상상을 이어갈 수 있는 듯합니다.
  6. 2009.11.29 00:2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강의실을 박차고 우주여행 떠나고 싶네요..
    • 2009.12.23 00:3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구름사이로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저 별과 나 사이의 공간격차에 가슴아파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저도 떠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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