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다른 은하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에는 광속으로도 무려 이백 만년이 걸렸지만, 그의 입장에서 시간은 불과 몇 시간에 불과한 것이다. 그가 성년이 되어 영생을 선택한 후에 여행을 떠날 때, 그의 친구 중 하나는 십억 년이 넘는 머나 먼 곳을 향해 출발했다. 물론 그가 그 은하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그에게는 순간이지만, 관찰자 에게는 그야말로 무한이므로, 그와 친구가 다시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게다가 각기 다른 우주로 산개한 그의 종족들은 수천 년에서 수백억년의 시공간적인 격차를 가지게 되었으므로, 무한의 삶이 보장되고 백억의 종족이 우주를 누비고 있다고 하더라도 종족 중 누군가를 다시 만나기에 우주는 지나치게 광대하다.



고향 은하는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불멸의 문명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건 고대의 선조들이 남겨둔 세포를 통해 새 생명을 잉태하여 종족의 명맥을 유지시키고 있는 시스템과 그것에 의해 성인으로 인정되는 천년 동안 보육과 보호를 받는 몇 명의 종족이 문명의 전체였다. 물론 앞으로 수억 년이 지나도 이런 시스템에 의해 그들의 종족은 항상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내며 문명을 연장해 나갈 것이다.

이미 자연의 섭리를 해독한 선조들의 지혜 덕분에 일만 년 이상의 수명을 보장받고 태어난 아이들은 시스템에 의해 그들 종족이 수십억 년 동안 쌓고 정리해 왔던 종족과 우주의 비밀을 천년 동안 쉬지 않고 주입받게 된다. 그들은 성인이 된 후, 다시 천년 동안 안정적인 시스템에 의해 타임터널로 연결된 잘 알려진 인근 은하를 누비며 '생각할 시간'을 보장받는다. 그들은 알면 알수록 우주는 더욱 경이롭다는 것과 여전히 풀 수 없는 미스터리가 무한함을 깨닫고는 권태에 빠질 틈도 없이 자유를 얻는 순간 무한 생명을 선택하고, 우주를 향해 출발해 버린다.

과거 그의 종족은 우주와 자신들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들을 정리하여 가장 근본이 되는 미스터리의 목록을 작성하고,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우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구라도 그 궁극적인 우주의 비밀을 풀게 되면, 고향 은하의 시스템에 알려 범우주적으로 퍼진 그의 종족들에게 해답을 선포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십억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천억이 넘는 종족이 비밀을 풀기위한 여행을 떠났음에도 아직 해답을 찾은 자는 아무도 없다. 아니 돌아온 자조차도 없다. 수천, 수만 광년 이내의 은하에서 해답을 얻지 못한 종족들은 점차 더 먼 은하를 향해 나아갔고, 이제는 아예 태초의 시간만큼이나 오래되고 먼 곳을 향해, 돌아오지 못할 여정을 떠난 종족도 있다.

그들이 우주의 수많은 의문 중에서 정리한 절대 비밀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그것은 종족의 비밀우주의 비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종족의 비밀은 ‘왜 우주에는 자신들의 무한한 지혜로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체와 문명이 있음에도 어떤 종족도 다른 종족과 직접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가?’이다. 문명은 대부분 생명에서 시작하여-생명의 기준이 주관적이긴 하지만 도저히 생명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단독문명을 이룬 특이한 경우도 있다- 의식을 지닌 지성집단이나 개체에 의해 문명을 이룬 후에 문명한계치에 도달하고는 소멸한다.



재미있는 것은 생명체의 진화 단계가 복잡하고 오래될수록, 또 문명의 주체가 되는 종족의 종류가 단순할수록 문명한계치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오십억 년 동안 꾸준하고 다양한 진화를 거듭한 지성을 가진 단일 종족이 이룩한 문명보다, 십억 년이라는 단기간 동안 극적인 진화를 이룬 이종의 여러 종족이 서로를 자극하여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여 합일한 문명이 더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루고, 더 오랜 시간 동안 문명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모든 문명은 다른 별의 문명과 단 한 번도 접촉하지 못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듯, 문명의 정점에 섰음에도 가장 가까운 문명과 대면하는 순간을 맞이하지 못한 채 소멸하고 말았다. 아니 문명과 문명이 만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순간이 문명이 끝나는 순간이 된다. 백광년 너머에 비슷한 수준의 문명이 있다면 그 두 문명의 영향력은 희한하게도 49광년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고, 가장 가까운 문명이 10만 광년 정도 떨어져 있다면 결코 그 절반의 시공을 뛰어넘지 못하는 수준이 그 문명의 문명한계치이다.

그들 종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 역시도 실존하는 다른 문명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성공한 경험이 없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그들만이 지닌 예외가 있었다. 오래전부터 그들은 다른 문명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그들이 다른 문명에 접근하면 그 문명은 그들이 도달하기 전에 기이한 원인으로 멸망해 버린 후이다. 비슷한 수준의 문명뿐만 아니라 훨씬 낮은 수준의 문명조차도 그들과의 접촉 직전이 문명한계치가 되어버린다. 아직 발전할 여지가 무궁한 이성적인 종족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도달하기 바로 전에 최후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그들 종족만은 멸망하지도 않았고, 문명이 정체되지도 않아 지금까지 무한하게 진보해 오고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우주 최초의 생명체도, 문명도 아니었으며, 문명의 정점에 가장 빨리 도달한 것도 아니며, 가장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룬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멸망하지 않았고, 그들보다 먼저 존재했던 모든 문명들의 기술과 문화를 습득하고 발전시켰고, 어느 새 우주에서 가장 발전한 문명을 보유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접촉하지는 못했으나, 여러 방법을 통해 다른 많은 신생문명들의 탄생과 멸망의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수억 년 동안 천만 개가 넘는 문명을 지켜보고 기록하고 분석했지만, 어떤 문명도 문명과의 만남, 즉 문명한계치를 넘지 못했다. 이것이 그들이 풀어야할 절대 비밀 중 한가지이다.



어쩌면 우주의 모든 문명은 단일 시스템에 의해 서로 접촉하지 못하도록 제어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문명은 문명끼리의 거리를 조절하는 끈으로 묶여있어서 한 쪽 문명의 끈을 당기면 다른 쪽의 끈이 짧아져서 절대로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그림출처 : Kunst und Fantasy Wallpapers
- 우주에서 가장 외로운 종족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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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계인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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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30 09:0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비밀댓글입니다
    • 2010.02.02 15:2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우리 외에 다른 문명이 있다는 것에 대한 답은 개인의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주를 파고들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발견할수록, 우리가 어떤 믿음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만남에 대면했을 때, 우리의 자세가 달라지게 되겠죠.
  2. 2010.01.31 10:4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런..... 사실 안드로메다에 가면 저희는 이웃인데.... (이거 말하면 안되나요? ㅎㅎ)
    • 2010.02.02 15:2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러게 말입니다. 데굴대굴님의 정체는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죠 ^^
      그럼에도 공식적인 커밍아웃은 시기를 잘 보고 하셔야 할 겁니다.
  3. 2010.01.31 23:3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네요.
    혹시 우리가 보낸 우주선이 다른 외계 문명한테 가면 둘중 하나가 멸망하게 될지도?
    • 2010.02.02 15:2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이미 문명간의 만남에 대한 각본이 짜여 있다면..
      우리는 제한된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는 한 발견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르죠. ^^
  4. 2010.02.02 19:4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마티님 책 <외계인은 왜 응답이 없을까> 잘 읽었답니다
    처음엔 단순한 재미려니 하고 읽었는데 의외로 탄탄한 과학상식에
    놀랐어요.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더군요. 정말로..

    다양한 우주얘기며 과학, 미래에 대해 접근이 매끄럽고
    뛰어난 상식에 놀랐습니다.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읽으면서 세삼 놀랐어요.
    사서 보길 잘 했다고 생각이 들어요.
    후기작도 기대할게요.
    • 2010.02.08 21:5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고마운 말씀입니다.
      책값이 장난아니게 비싼데도 구매해주신 분들께 늘 고마움 마음입니다.
      그리고 치졸한 습작에 격려해 주심에도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그림님의 따뜻한 마음에도 늘 고마움을 느낍니다. ^^
  5. 민지아빠
    2010.02.03 01:03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글을 참 오랜만에 쓰셨네요.
    고대했었는데... 반갑네요. 좋은글 많이 써주시기를...
    • 2010.02.08 21:5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이야기를 구상만 해놓고 있다가 오랜만에 포스트로 올렸지만 시간이 없어서 빠르게 연재하지를 못했네요.
      이렇게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6. 월배
    2010.02.08 22:2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왠만해선 댓글 안다는데
    우왕~ 너무 잘 읽었어요
    • 2010.02.08 22:3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아.. 감사합니다.
      귀한 시간 활용해서 댓글 주시다니 ..힘이 불끈 나네요 ^^
  7. 2010.02.23 16:2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정~~~~~~~~말~~~~~~~~~~
    오랜만에 왔습니다^^
    그러고보니...
    왜 서로 못만날까요.. 음...
  8. 아모스
    2010.03.06 17:1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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