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진보는 속도와 관련 있다.”
이 말은 1987년부터 1994년까지 방송되었던 2360년대를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 Star Trek 두 번째 시리즈인 The Next Generation(TNG)의 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말입니다. 1996년 개봉된 스타트랙의 여덟 번째 극장판 First Contact에서 보그(Borg) 종족은 시간 여행을 통해 2063년 4월 4일의 지구로 가서 몬태나의 미사일 기지에 공격을 퍼붓는데, 다음날 일어날 인류 최초의 워프 비행을 방해하려고 한 것입니다. 다행히 엔터프라이즈 승무원들의 도움으로 제프램 코크레인(Zefram Cochrane)은 초광속 우주선 “피닉스”를 타고 워프에 성공하고, 마침내 인류는 외계문명과의 첫 만남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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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랙 시리즈 전반에는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문명의 기준을 워프 개발 성공 여부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를 탐험하는 모든 이는 워프를 개발하지 못한 문명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지령에 따라야 합니다. 이 지령에는 문명의 고유성을 보호하려는 선한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으로는 광속의 장벽을 깨지 못해 항성 간 여행을 할 수 없는 문명은 진정한 우주 문명이 아니라는 문명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첫머리의 말처럼 문명의 진보는 속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인류의 문명은 지난 수천 년 동안 거리를 정복하면서 발전해 왔고, 진보의 속도는 얼마나 ‘빨리 거리를 단축하는가?’로 결정되었습니다.

인류는 걷는 것에서 시작해 말을 타고 속도를 단축하고 배를 이용해 공간을 극복했으며, 다시 복잡한 기관을 발명함으로써 지구의 모든 곳을 터전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에 이르러 대기권을 벗어나며 우주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단 하나의 물체도 태양계 바깥으로 내보내지 못했으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백 년이 더 지나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 태양계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조금 모호하지만, 태양이 근처 별들의 중력장을 압도하는 12만 5천AU(약 2광년) 너머로 가려면 현재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빠른 우주선(초속 30Km)으로도 2만 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우리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계 센타우루스자리 알파(α Centauri)까지는 4만 년이 넘게 걸립니다.



고성능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면 별들이 촘촘히 붙어 있는 듯이 보이고, 실제로도 많은 별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힘으로 얽혀 있습니다. 4천억 개의 항성이 모여 있는 우리 은하의 원반 지름은 대략 10만 광년인데, 거기서 우리 태양과 센타우르스 사이의 4.3광년이란 붙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류 문명의 전 역사보다도 긴 시간이 지나도 가장 가까운 이웃 항성계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만약 인류가 은하 반대편까지 우리의 메시지를 담은 우주선을 보낼 위대한 계획을 세우고, 에너지가 고갈될 염려가 없는 초속 120km의 아주 빠른 우주선을 발사했다고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현재 은하 중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약 26,000광년입니다.
 
우주선은 모든 우주의 재난을 무사히 넘기고, 은하의 중심을 살짝 피해 마침내 1억 천만 후, 은하 중심에서 26,000광년 떨어진 반대쪽에 도달했습니다. 우주선의 인공지능은 1억 천만년 전에 은하 반대쪽에 번성했던 인류의 원대한 메시지를 가까운 별에 타전합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를 받은 것은 놀랍게도 지구였고 그들은 오래전 인류가 멸망한 후에 새롭게 발현한 문명이었습니다. 그들이 과거 인류의 메시지를 받은 이유는 우리 태양계가 대략 초속 220km로 은하 중심을 기준으로 공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전 주기가 약 2억 2,600만 년이므로, 1억 천만년 후 우리 태양계는 지금과 반대지점에 가 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에는 우주선이 별의 소용돌이와 상관없이 절대 좌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는 등의 오류가 있지만, 그저 충분한 속도가 없는 문명의 허망함에 대한 농담일 뿐입니다.

인류가 충분한 속도를 만들 법칙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문명의 확장성은 진부해지다가 결국 우리는 태양계 안에서 우물안 개구리로 생을 마감하고 말 것입니다. 현재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진보한 이론에 의하면 빛의 속도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질량이 증가하는데, 그 질량 증가치는 처음엔 늘어나는 질량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가도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질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광속에 다다르면 질량은 무한대 됩니다. 그래서 무한대의 에너지 공급이 없는 한 무한하게 광속에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명은 계속 진보할 것이고, 그에 따라 속도는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다시 속도는 진보를 촉진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새로운 이론으로 무장하여 광속에 버금가는 속도를 따라잡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광속을 극복할 수 없다고 치더라도, 런던대학 버벡 컬리지(Birkbeck College)의 천문학자 이언 크로포드(Ian Crawford)의 ‘어쩌면 우주에 우리 은하에는 우리밖에 없을지도 모른다(Maybe we are alone in the galaxy after all)’라는 글에서처럼 인류가 광속의 10%(워프 0.5)로 달릴 수 있는 우주선을 개발하여 쉬지 않고 외부로 나아가며 400년마다 식민지의 규모를 두 배로 늘린다면, 문명의 가장자리 경계는 매년 0.02광년씩 확장되어 500만 년 후에는 우리 은하 전체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500만 년은 인간에게 있어서 엄청나게 긴 시간이지만 은하의 수명에 비하면 0.05%에 지나지 않고, 100억 년이 넘는 천문학적인 시간의 스케일과 비교하면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계로의 확장을 멈추지 않는 문명이라면 결코 속도의 한계점 확장에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기록과 한계는 깨어지려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현재 발견한 한계 속도 역시도 영원히 깨지 못할 벽이 아니라 깰 방법을 이론적으로 완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미구엘 알쿠비에르(Miguel Alcubierre Moya)가 "The Warp Drive: Hyper-fast travel within general relativity"라는 논문에서 제시한 알쿠비에르 항법(Alcubierre drive)은 앞쪽에 있는 공간을 수축시키고 뒤쪽 공간을 확장하면서 빠르게 전진하는 원리를 이용해 현재의 물리법칙을 위반하지 않고도 광속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해줍니다. 다만, 그의 이론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술이 충분하지 못할 뿐입니다.



어쩌면 지금껏 그래 왔듯이 뜻밖의 발견으로 그 기술이 실현되어 2063년 최초의 초광속 비행이 성공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다시 인류는 1947년 10월 14일 무수한 좌절을 뚫고 처음으로 음속을 돌파하고서 그랬듯이 곧 새로운 벽을 넘으려는 도전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림 : 영화 스타트랙 중에서
-인류의 진보와 속도(warp speeds)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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