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은 어떻게 말할까요? 
여기서 말하는 ‘말’은 우리가 하는 말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의사소통 도구를 말합니다. 물론 인류만 한정해서 말하자면 말은 소리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종종 소리 이외의 몸짓이나 눈빛 등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 말한다고 할 때, 말을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구에 사는 일부 동물은 냄새나 몸짓, 초음파, 색깔, 빛 등을 사용해서 의사를 전달하기도 하고, 식물도 자극적인 냄새로 주변 다른 식물에게 위험을 알려 경고하는 등의 의사소통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사를 가장 잘 나타내고,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데는 소리만한 게 없습니다. 입으로 낼 수 있는 수천가지 소리를 조합해 의미를 가진 단어를 만들고, 이를 엮어 문장을 만들어 의사를 전하고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그렇다고 우주의 모든 지성 종족이 소리로만 말할까요? 물론 아닙니다.소리를 도구로 사용하기에는 제약이 많습니다. 반드시 소리를 전달하는-파동을 다른 곳에 옮겨주는- 공기나 물 같은 매개물질이 있어야하고, 너무 큰 소리나 작은 소리는 쉽게 들을 수 없고, 전달하는 거리도 한계가 분명합니다. 한 예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진동수의 영역은 16에서 2만 Hz까지로 한정됩니다. 우리도 불과 한 세기 조금 더 전, 전기와 전파를 이용한 통신 수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먼 곳에 의사를 전하려면 소리를 기록하려 만든 문자와 그림 등을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소리를 더 멀리 선명하게 전달하고자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문명의 외계인도 우리처럼 소리로 만든 말을 사용할까요? 우리와 비슷한 환경에서 진화해 지금의 지구와 거의 똑같은 행성을 이룬 곳의 생물이라 해도 반드시 소리를 통해 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과거 지구에서 곤충류나 어류가 지성을 얻게 되었다면 그들은 분명 진화 과정에서 소리가 아닌 다른 도구를 얻어 의사소통하는 법을 발전 시켰을 것입니다. 소리보다는 페로몬(pheromone), 호르몬(hormone) 같은 미묘한 분비성 물질이나, 색채(色彩)가 풍기는 색감(色感)이 더 복잡하고 풍부한 언어를 이루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물며 공기의 밀도가 우리와 많이 다르거나 혹독한 추위 덕에 심해에서만 생물이 탄생한 문명 행성이 있다면 그들도 소리를 사용할까요? 또는 땅속을 헤치고 다니며 양분을 얻어 살아가는 종족이 있다면 그들도 소리를 사용할까요? 또 빛이 드문 환경이나 고온의 행성, 아예 대기가 없는 행성 표면에 고착해 대지의 광물만으로 생존하는 생명체도 소리를 사용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외계종족 대부분은 비록 우리와 다른 언어일지라도 말을 합니다. 실제로도 그럴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런데 왜 외계인이 말을 한다고 생각할까요? 이는 우주에서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이 지구와 비슷해야한다는 착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항성의 생명체 거주가능 영역(habitable zone, HZ)을 가늠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잠시 예로 들었듯 우주에는 다양한 환경에서 발아한 생명의 씨앗들이 많습니다.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놀라운 환경에서, 감히 생명이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생명체, 그 중에서도 지성을 가진 종족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예전에 소개한 종족 중에는 수명이 매우 짧지만 양자컴퓨터처럼 빠르게 생각하여 순식간에 문명을 이루고 우주를 탐색하는 종족이 있습니다. 이런 종족에게 소리를 통한 말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마디 말도 하기 전에 이들 사이엔 그 수십 만 배에 해당하는 정보가 오갑니다. 이들은 아예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소리가 무언지도 모릅니다. 소리를 구성하는 진폭 사이가 그들에겐 평생이 될 수도 있을 만큼 이들의 삶은 빠르게 돌아가므로, 우리 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이들의 정보 전달 능력은 신에 가깝습니다. 일 초 동안 이들이 전달하는 정보를 말로 표현하려면 백년 내내 조잘거려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우리가 말로 할 수 있는 정보 전달의 수준이 그만큼 낮고 한정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말에 감정을 담고, 몸짓도 더하고, 그림까지 그리곤 하지만 전하고자 하는 정보를 온전하게 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소리만큼 확실한 의사소통 수단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이대로 -우리가 보기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가 계속되거나 획기적인 기술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정신감응으로 매개물질 없이, 공간 제약도 없이 의사 전달이 가능해 지고, 소형화된 기기의 도움으로 많은 양의 정보를 한꺼번에 주고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말을 버리진 못할 겁니다. 아무리 정보전달 기술이 진보한다고 해도 받은 정보를 해석하고, 그걸 정보로 인지하는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드디스크에 백과사전이 들어있어도 그걸 일일이 검색해 찾고, 이해하지 않는 한, 그건 말 그대로 저장된 정보에 불과합니다. 결국 정보처리 능력이 향상되지 못하는 한 의사소통 수단도 그다지 발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주의 다수 종족은 문명이 특정한 기준에 도달하면 말을 바꿉니다. 입을 뻐끔거려 공기방울로 말하던 종족도, 카멜레온 같은 피부를 알록달록 물들여 온몸으로 말하던 종족도, 복잡한 호르몬을 분비해 냄새로 말하던 종족도, 빛의 세기와 깜박임과 색상으로 말하던 종족도, 전하고자 하는 바를 홀로그램처럼 눈에 투영해 말하던 종족도, 더듬이로 전파를 간섭해 도플러효과(Doppler effect)를 일으켜 말하던 종족도, 반드시 접촉을 통해야만 말할 수 있던 종족도 모두 말을 바꿉니다. 말하는 법을 바꿉니다.


기존에 쓰던 말로 정보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생긴 것이 문제지만 말했듯이 더 나은 정보 전달 수단이 나와도 정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향상되지 못하면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주의 다수 종족은 문명이 특정한 기준에 도달하면 말 듣는 방식이 먼저 바뀝니다. 정확히 말해 말을 듣는 능력이 바뀌어야만 문명이 특정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정보 해석 능력이 진보하면 우주 어느 지성 종족이라도 자연스럽게 우주가 말하는 더 많은 정보를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마선을 듣고, 초음파를 듣고, 영역이 나뉜 빛을 들을 수 있다면 우주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을지 상상이 가십니까? 우리는 듣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들을 수 있다는 건 들을 능력이 된다는 말이며, 그만큼 정보처리 능력이 진보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류처럼 말이 한정된 종족이  특정 수준의 문명에 도달하려면 먼저 말을 듣는 능력이 바뀌어야만 합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외계인을 어떻게 말할까요? 
 
말은 곧 문명의 수준 또는 앞으로 진보할 가능성의 척도입니다. 언제까지 종족 고유의 말을 유지하는 종족은 문명이 일정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문명을 마감합니다. 우수한 말을 타고난 종족은 좀 더 쉽고 빠르게 문명을 꽃피웁니다. 말을 잘하는 종족이, 말하는 법을 발달시킨 종족이, 문명의 정점에 서는 게 우주의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만약 별 사이를 여행할 능력이 되는 외계인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면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그들의 말 한마디엔 우리가 평생 배운 것 보다 방대한 양의 정보가 담겨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용량 초과로 두뇌가 버벅거리다가 영구히 다운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교양 있는 외계인은 어리석은 문명과 직접 대면하여 대화하지 않습니다. 대화하려는 종족과 비슷한 수준의 말을 구사할 수 있는 ‘대리 생물’을 만들어 보냅니다. 어떨 땐 그 수준차이가 하도 심해 대리인이 다시 더 하위의 대리인을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외계인이 인류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인류가 흥미로 개미와 대화를 시도할망정 개미에게 지적인 답변을 기대하지 않듯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여러 무리의 개미 중에서 한 마리가 특별나게 보이지 않듯 우주에 널리고 널린 인류 수준의 문명 중에서 인류가 그다지 특별나지도 않으므로, 우연히 이곳을 지나는 중이 아니라면 일부러 찾아 올 이유가 없습니다. 

인류가 종종 마주치는 외계인은 사실 외계인이라기보다는 외계인이 만든 심부름꾼 정도입니다. 물론 그 조차 인류보다 더 높은 지성을 지니긴 했지만 말입니다. 그들이 인류와 접촉했다면 우연이거나 잠시의 흥미, 또는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만 이들의 방문이 침략이 목적일리는 절대 없지만 가급적 조심해야하는 건 맞습니다. 방금 말했던 어린아이는 가끔 호기심만으로 이유 없이 개미집을 파헤치거나 불을 지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잠시 말이 샜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말은 문명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이며, 잘 듣는 것이 잘 말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리고 잘 들으려면 먼저 자신의 정크유전자에 쳐 박혀 있는 과거에 할 수 있었던 듣는 능력을 꺼내야 합니다. 까마득한 옛날 당신이 미생물이었을 때 듣던 세포분열(cell division)을 알리는 소리, 광합성을 할 때 들었던 빛 알갱이가 두드리는 소리, 작은 포유류였을 때 듣던 공포의 냄새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한 단계 발전을 예고하는 진화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럼 인류는 새로운 소리를 듣고, 흉내 내어 마침내 새로운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참! 한 번 더 말하는데 어린아이를 못 본 체 하시길…….
바로 옆에 보이시죠?

-요청하신 분이 계셔서 오랜만에 비과학상식 카테고리를 열었습니다 ^^
-라이트노벨 연재도 많이 봐주세요. 모 사이트에서 나름 인기를 얻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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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계인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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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30 06:3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외계인은 욉욉하고 웁니다
    는 개드립입니다;;;;

    외계인들이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통역 물고기 같은 거 하나 주고 갔으면 좋겠어요...
    외계어, 외국어, 여자어 통역 가능한걸로다가요 ㅋㅋ
    • 2012.06.30 13:5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바벨피쉬는.. 이제 구시대 유물이 되었습니다 ^^
      요즘은 엄마들의 치맛바람으로 은하계의 언어통일이 됏거든요 ^^
  2. 한빛
    2012.06.30 09: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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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틴님 글을 보니 말 없이 무심한 듯 옅은 미소를 띄우고 인간들을 바라보고 있는 외계인(혹의 그의 대리자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네요. 읽는 것만으로 명상을 한 듯 상쾌한 기분입니다. 무더위에 너무 무리하시지 마시고 건강하게 보내세요. ^^
    • 2012.06.30 13:5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꽤 덥습니다 요즘.
      분양쪽 일을 하는데 그다지 바쁘지 않아서 늘 졸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한빛님을 이렇게 뵈니 얼마나 기쁜지 ^^
    • 2012.06.30 15:2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가끔은 정말 외계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ㅋ
      (외계의 능력으로 저 여친 좀...)
  3. 자이
    2012.06.30 14:1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하시는 말씀이 모두 진리네요.
  4. 2012.07.04 10:2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제가 여태까지 읽은 모든 글중 에서 최고입니다^^ 감사합니다. 마틴 님은 신이신거 같아요^^ 굉장합니다^^
  5. 2012.07.04 23:3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 궁금한 점이 있는데 라이트 노벨에 있던 글 다 삭제된 건가요? 아깝네요..
    즐겁게 보고 있었는데..
    • 2012.07.06 14:07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문피아라는 소설연재 사이트에 연재중입니다.
      양쪽에 하려니 번거로와서요 ^^
      http://www.munpia.com/bbs/zboard.php?id=bn_605
  6. 김준
    2013.01.12 14:06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네요
  7. 2013.02.0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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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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